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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 한우 100g이 5000원이 되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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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한우 등심을 100g에 5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롯데가 그렇게 싸게 팔면 영세한 정육점들은 어쩌란 말이냐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저렴한 가격이 가능하게 됐는지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

한우 가격에 특별히 관심 없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등심 기준 100g에 1만 원 정도는 잡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싼 편입니다. 요즘은 삼겹살도 좀 질이 좋으면 3,500원은 합니다.

수입산 소고기 등심이 보통 100g에 5,000원을 넘습니다.

1등급 한우 등심이 5,000원이면 정말 싼 셈인거죠.

 

■ 복잡한 유통단계가 범인??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우리는 관행적으로 '복잡한 유통구조'를 그 범인으로 지목하곤 합니다.

실제로 그 유통구조를 들여다보면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우를 예로 들어보면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오는 동안 우시장 → 수집상 → 도축장 → 중도매인 → 도매상(가공업체) → 소매상 → 소비자 등 6~7단계를 거칩니다. 이 복잡한 유통단계를 좀 줄이면 한우가 저렴해지거나 농가가 가져가는 수입이 늘어날 것도 같습니다.

농가에서 kg당 1만 5,000원에 넘긴 한우를 식당에서 사 먹으면 10배 이상 오른 가격이 되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단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들이 모두 쉽게 사라지기는 어려운,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도매인이라는 유통업자는 도축장에서 도축된 한우들이 모인 경매장에서 한우를 낙찰받아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육류 도매상들에게 보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도매상들은 필요한 물량을 중도매인에게 알려주고 주문을 하면 중도매인들은 도축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경매로 받아오는 구조입니다.

 

만약 이 업자가 없다면 도축장이 직접 전국의 도매상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하는데요. 그건 과일 가게 주인에게 과수원에 가서 직접 과일을 떼어다 팔라는 말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서로 불편합니다. (상인들 전화받느라고 과일나무 돌볼 시간이 없어집니다.)

 

불필요한 유통단계는 실제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불필요하다면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상인들이 굳이 불필요한 단계를 거쳐가며 거래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 유통단계 축소보다 자유로운 경쟁이 중요

그럼 유통구조를 개선해서 농수산물 가격을 낮출 방법은 없다는 말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통 단계의 개수를 줄이려는 시도는 각각의 단계들이 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어서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그 유통 단계에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중도매인이라는 단계 자체는 없애기 어렵습니다만, 누구나 쉽게 중도매인이 될 수 있게는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중도매인이 소수인 시장에서는 경매장에 들어온 한우를 kg당 1만 7,000원에 낙찰받은 중도매인이 그 한우를 경매장에 보낸 농가에 직접 전화해서 1만 5,000원에 거래하자고 (1만 7,000원이 아니라 1만 5,000원만 송금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이 경우 계속 그 경매장에 한우를 팔아야 하는 농가는 그 경매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중도매인의 심기를 거스르기 어렵습니다. 그 독점력이 유통비용을 늘립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경매장에 중도매인만 들어와서 낙찰받을 수 있었던 걸 매매참가인이라는 별도의 자격을 도입해서 대량 구매자들은 누구나 낙찰받을 수 있게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유통 단계를 줄인 게 아니지만 그 덕분에 롯데도 이 매매참가인 자격을 얻어서 경매장에서 직접 한우를 낙찰받았습니다.

 

사실 이마트도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한우를 매입했습니다.

과일 채소 등의 농산물도 비슷한 구조여서 대형 마트들은 이 시장에서도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원가를 낮춥니다.

 

■ 중고차 시장의 유통단계

중고차 경매장에는 지금도 등록된 중고차 판매상만 입장해서 차를 낙찰받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참가해서 낙찰받으면 매도인-경매장-소비자 이렇게 3단계로 끝날 텐데 그걸 인위적으로 막아놓는 바람에 매도인-경매장-중고차상인-소비자 이렇게 4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 소비자는 낙찰을 받아놓고도 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걸 막으려면 차 한 대를 사러 온 소비자들에게도 보증금을 일일이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일 때문에 경매절차가 늦어지고 번거로워집니다.

 

이럴 때 유통마진의 거품을 빼려면 단계를 줄일 게 아니라 경매에 참가하는 중고차 판매상들의 숫자를 늘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고차 소비자들이 모여서 단체 구매를 하겠다고 하면 그 대표자가 보증금을 납부하고 경매에 직접 참가할 수 있게 허용하는 등의 일입니다.

 

유통 단계는 분업의 결과물이어서 단계를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유통 단계가 길고 복잡하다면 그건 오히려 각 단계가 전문화 효율화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형마트들이 산지 직거래로 그 단계를 없앤 것 같지만 각 단계별 유통업자들이 하던 일을 자사 직원들이 하는 걸로 바꾸고 그 단계에 필요한 비용과 마진을 대형마트에서 모두 가져가는 것뿐입니다.)

 

농수산물 가격에 거품이 있다면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이려는 시도보다는 각 유통단계에 충분한 경쟁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유통단계를 줄이는 건(할 수만 있다면) 하지 말라고 말려도 업자들이 알아서 합니다.

경쟁은 충분한데 업자들이 그 유통단계를 그냥 놔두고 있다면 그건 꼭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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